얼마전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을 만났을 때, 당신이 번역하신 책이라며 한 권 내미시더군요.
제목이 특이하죠.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도 그렇지만 김종철 선생님은 작명의 대가인 듯 합니다.
원제는 Stumbling Toward Justice이거든요.
언어를 만지고 가공하고 그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 연구자로서 참 부러운 능력이지요.


하여간 손수 건내신 책이라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받은 로이의 [9월이여 오라]도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대안대학 비슷한 곳을 다니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리 호이나키라는 사람의 자전적인 글입니다(영남대를 그만둔 김종철 선생님의 삶과도 비슷하지요. 물론 김종철 선생님은 농부로 살진 않지만요.ㅎㅎ)

하여간 농사꾼의 삶으로 돌아가서 '장소'와 '공간'에 관해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번 들어볼 만 합니다.

그런데 더 큰 성과가 있어요.
책 중간에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라는 사람에 관한 언급이 있어요.
가톨릭 복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 아나키스트인 사람들로 <가톨릭노동자센터> <환대의 집>을 운영했던 분들인데, 참 흥미로운 말을 하고 있군요.

?

로스앤젤레스의 가톨릭노동자 센터의 책임자로 일해온 제프 디트리치는 그곳에서 25년을 지낸 뒤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하거나 그들을 주류에 합류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기금을 모으거나 큰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불가피하게 고통을 주는 상처들을 폭로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을 돌에서 살로 바꾸어주는 래디컬한 수술을 받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기확대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뻔뻔스러운 사회사업 전문가주의로 떨어질 것이다. 이번 세기 동안 우리가 얻은 집합적인 경험은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행한 ‘작은 방식’이 낡은 공상적인 신학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좀더 인간다운 세계―을 성취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권력이라는 수단은, 세상이 우리더러 믿으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오직 재앙을 불러들일 뿐이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는 사회에 영향을 주거나 사회를 움직이는데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로버트 코울즈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우리가 민권이나 인권,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라는 좀 더 큰 명분을 가진 문제에 맞서 싸워야 하지 않느냐고요? 예, 물론 그래야지요. 만약 우리가 추상적인 도덕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서든 있어야 합니다.……하지만, 우리들이 [바로 여기 바워리 거리(뉴욕의 부랑자 거리―역주)의 사람들을 위해서 스프를 준비하는 일] 이상의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입니다. 권력과 영향력과 돈이 지나다니는 통로에 살면서 다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 결정을 하는, 그런 삶을 원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추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칭 하인들―때로는 내게는 노예로 생각되지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문화 속에는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남자와 여자들을 위한 작은 공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국내의 가톨릭운동도 이 사람들에 주목하고 있더군요.
얼마전 천주료 부산교구에서는 도로시 데이의 이름을 따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소 '도로시의 집'을 세웠네요.
http://blog.ohmynews.com/surgery/tag/%EB%8F%84%EB%A1%9C%EC%8B%9C%20%EB%8D%B0%EC%9D%B4

그리고 인천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국수를 주시는 민들레국수집의 서영남 수사님도 도로시 데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http://ngo.joongang.co.kr/technote/read.cgi?board=ngo&y_number=223

알린스키의 공동체조직화(CO)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공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전략가이자 실천가로서 그가 이룬 업적은 분명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일차적인 싸움에서 이긴 뒤(이긴다는 표현도 때론 우습지만), 그래서 어디로?라는 물음에 알린스키는 좀 공허한 답을 했거든요.

그런데 왠지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에서 더 근본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풀뿌리운동, 풀뿌리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데 도움을 줄 또?다른 흐름을 찾게 되었네요.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네요.